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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푸스 회계부정 사건 정리 — 13년간 숨긴 1조 7천억 원과 자문료 36%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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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푸스는 카메라와 내시경으로 알려진 일본의 대표적인 정밀기기 회사다. 그런 회사가 13년 동안 1177억 엔, 우리 돈으로 1조 7천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장부 바깥에 숨겨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2011년 가을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구멍을 찾아낸 사람이 감사인도, 회계법인도, 사외이사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취임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영국인 사장이 자문료 한 줄을 붙잡고 늘어진 결과였다. 이 글에서는 손실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방식으로 옮겨졌으며, 왜 13년 동안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는지를 차례로 정리한다.

엔고가 만든 첫 번째 균열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급격히 오르면서 일본 수출 기업의 채산성은 빠르게 나빠졌다. 올림푸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카메라를 팔아 벌던 이익이 환율 하나로 절반 가까이 깎여 나갔다. 회사는 그 구멍을 제품 경쟁력이 아니라 금융 투자로 메우기로 했다. 당시 일본 기업 사이에서는 자이테크, 즉 재테크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고, 본업보다 금융 수익이 크다는 사실이 경영 능력의 증거처럼 여겨지던 시기였다. 제조업체가 금융 부문에서 이익을 내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일부 기업은 아예 별도의 자금 운용 조직을 두었다. 올림푸스의 선택도 그 시절 기준으로는 특별히 앞서간 것이 아니었다.

올림푸스의 재무 부서는 특정금전신탁을 비롯한 금융 상품에 회사 자금을 투입했다. 초기 몇 년은 실제로 성과가 있었다. 문제는 1990년이었다. 일본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같은 해에 무너지면서, 장부에 남은 것은 수익이 아니라 손실이었다. 손실 규모는 1990년대 중반에 이미 1000억 엔을 넘어섰다. 한 해 영업이익을 통째로 날린 규모였고, 그대로 공시하면 경영진 전원이 자리를 지킬 수 없는 수준이었다.

도바시, 손실을 날려 보내는 기술

경영진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손실을 그대로 공시하고 책임을 지거나, 손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들이 고른 것은 두 번째였다. 일본 금융가에서는 이 방법을 도바시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옮기면 날려 보내기라는 뜻이다.

도바시는 결산일 직전에 손실이 난 자산을 다른 법인으로 넘겨 장부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수법이다. 장부를 덮는 것이 아니라 장부 자체를 옮기는 방식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회계 감사에서 걸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감사인은 회사가 제출한 재무제표를 검토할 뿐, 자산을 넘겨받은 역외 법인의 안쪽까지 들여다볼 권한도 유인도 없었다.

올림푸스는 케이맨 제도와 싱가포르에 세워진 펀드들에 손실 자산을 넘겼다. 이 펀드들은 형식상 올림푸스와 자본 관계가 없는 별개 법인이었기 때문에 연결 재무제표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회사의 재무제표 어디에도 이 펀드들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았다. 문제는 옮긴 손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언젠가는 되사 와야 했고, 되사 오려면 감사인에게 설명이 되는 돈이 필요했다.

영업권이라는 이름의 통로

경영진이 찾아낸 통로는 기업 인수였다. 회사를 실제 가치보다 훨씬 비싸게 사들이면, 그 차액은 영업권이라는 무형자산으로 장부에 올라간다. 그리고 영업권은 나중에 손상차손으로 조용히 털어낼 수 있다. 인수라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의 외피를 쓰고 과거의 손실을 정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06년부터 2008년 사이 올림푸스는 국내 세 회사를 인수했다. 얼굴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 전자레인지용 식품 용기를 만드는 회사, 폐기물 재활용 회사였다. 카메라와 내시경을 만드는 정밀기기 기업이 화장품 회사를 사들인 것이다. 세 회사에 들어간 돈은 734억 엔이었다. 그리고 인수 1년 만에 올림푸스는 그 가치의 4분의 3가량을 손실로 처리했다. 누가 보아도 설명하기 어려운 거래였지만, 그때까지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작은 잡지가 던진 돌

2011년 7월, 일본의 경제 전문지 팍타가 올림푸스의 인수 거래를 정면으로 다뤘다. 발행 부수가 수만 부에 불과한 매체였고, 대형 언론은 이 보도를 받아쓰지 않았다. 기사는 곧 잊혔고 주가도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 대기업의 회계를 둘러싼 의혹 기사는 그전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대부분 그렇게 묻혔다.

그러나 이 기사를 영어로 번역해 읽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해 사장에 오른 마이클 우드퍼드였다. 그는 1980년 영업사원으로 올림푸스에 입사해 30년을 일한 인물로, 일본 대기업이 외국인을 최고경영자 자리에 앉힌 사실상 첫 사례였다. 회사 안에서 성장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일본식 조직 문화의 바깥에 서 있던 그의 위치가, 이 사건의 방향을 갈랐다.

6억 8700만 달러짜리 질문

우드퍼드가 가장 이상하게 여긴 것은 국내 3개사 인수가 아니라 2008년의 자이러스 인수였다. 올림푸스는 영국의 의료기기 회사 자이러스를 20억 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에 사들였다. 여기까지는 전략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거래였다. 내시경 사업과 의료기기 사업은 실제로 접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인수를 도왔다는 자문사에 지급된 돈이었다.

자문 수수료는 6억 8700만 달러였다. 수취인은 뉴욕이나 런던의 대형 투자은행이 아니라 케이맨 제도에 주소를 둔 이름 없는 회사였다. 수수료는 현금이 아니라 우선주와 신주인수권 형태로 지급됐다. 이런 증권은 현금과 달리 지급 시점에 가치가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돈이 건너간 직후 그 회사는 등기부에서 사라졌다.

1%와 36% 사이의 거리

기업 인수 자문사가 받는 수수료는 통상 거래 금액의 1%에서 2% 수준이다. 20억 달러 규모 거래라면 많아야 4천만 달러 안팎이다. 올림푸스가 지급한 금액은 거래액의 36%였다. 업계 기준을 스무 배 넘게 웃도는 수준이다.

이 돈의 정체는 나중에 밝혀졌다. 자문의 대가가 아니라, 케이맨 펀드에 쌓여 있던 옛 손실을 갚기 위한 통로였다. 1990년대 초 금융 투자에서 발생한 손실이 2008년 의료기기 인수 대금이라는 옷을 입고 정리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드퍼드가 본 것은 비싼 자문료가 아니라 손실이 흘러간 경로였다. 그는 사외 회계 전문가에게 별도로 검토를 의뢰했고, 돌아온 답변은 이 수수료 구조가 정상적인 거래에서는 나타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회장에게 여섯 차례 서한을 보냈다.

15분 만에 끝난 이사회

2011년 10월 14일 오전, 올림푸스 이사회가 열렸다. 안건은 단 하나, 사장 해임이었다. 표결은 15분 만에 끝났고 반대표는 한 장도 나오지 않았다. 회사는 그에게 차량과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가라고 통보했다. 해임 사유로 제시된 것은 경영 방식의 차이라는 한 줄이었고, 자문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우드퍼드는 그날 오후 지하철을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향했다. 영국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모아둔 자료를 중대사기수사국에 넘겼다. 10월 26일 기쿠카와 쓰요시 회장이 물러났고, 11월 8일 올림푸스는 마침내 손실 은폐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발표 다음 날 주가는 다시 20% 넘게 빠졌다.

남은 계산서

발각 이후 한 달 사이 올림푸스 주가는 80% 넘게 하락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7조 원에 가까운 가치가 사라졌다. 회사는 상장폐지 위기까지 몰렸다가 자본 확충과 사업 재편을 거쳐 겨우 살아남았다. 거래 은행과 협력사는 몇 달 동안 결제 조건을 다시 짜야 했다.

2013년 도쿄지방법원은 전 회장과 임원 두 명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나 형은 모두 집행유예였다. 법인에는 7억 엔의 벌금이 부과됐다. 사라진 시가총액과 견주면 10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고, 13년에 걸친 은폐의 대가치고는 가볍다는 평가가 많았다.

회사를 구한 사람에게 남은 것

마이클 우드퍼드는 부당해고 소송에서 1000만 파운드의 합의금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일본의 어느 기업에서도 다시 일하지 못했다. 경영자로 복귀하는 대신 그는 기업 지배구조를 주제로 강연하며 지냈다. 내부 고발자가 조직 안에서 어떤 위치에 놓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금도 자주 인용된다.

올림푸스 자체는 살아남았다. 이 회사는 지금도 세계 소화기 내시경 시장의 70% 안팎을 점유하고 있다. 기술은 남았고 장부는 정리됐으며 경영진과 사외이사 구성도 바뀌었다. 다만 13년 동안 그 장부에 서명한 감사인과 사외이사 가운데 누구도 손실을 먼저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았다.

투자자가 가져갈 교훈

이 사건이 개인 투자자에게 남기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재무제표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매출이나 이익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지출과 비정상적으로 큰 무형자산이다. 본업과 무관한 회사를 연달아 인수하거나, 인수 직후 대규모 손상차손을 반복해서 인식하는 기업은 그 자체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인수 금액보다 인수에 딸린 부대비용이 더 눈에 띈다면 그 항목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 하나는 지배구조다. 올림푸스에는 사외이사도 있었고 감사인도 있었다. 제도는 갖춰져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손실을 숨기자고 처음 결정한 사람들은 이미 회사를 떠난 뒤였고, 남은 사람들은 앞사람의 결정을 물려받아 계속 덮었다. 아무도 새로 결심하지 않았는데도 은폐는 계속됐다. 13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쌓였다.

비슷한 사건과의 차이

회계 부정 사건은 대체로 매출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없는 매출을 만들어 이익을 키우고 주가를 떠받치는 구조다. 올림푸스는 정반대였다. 이미 발생한 손실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회사의 현금을 밖으로 내보냈다. 부풀리기가 아니라 지우기였고, 그래서 손익계산서만 들여다보는 방식으로는 잡히지 않았다. 현금흐름표의 투자 활동 항목, 특히 인수와 관련된 지출을 함께 봐야 드러나는 유형이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지점은 시간이다. 매출 부풀리기는 다음 분기에 곧바로 부담이 돌아오지만, 손실 이연은 이론적으로 무한히 미룰 수 있다. 되사 올 돈만 계속 마련할 수 있다면 은폐는 끝나지 않는다. 올림푸스의 13년은 그 구조가 만들어낸 시간이었다.

마치며

숫자는 스스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숫자를 옮기는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올림푸스 사건이 회계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화의 문제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질문을 던진 한 사람이 없었다면, 이 구멍은 더 오래 덮여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치른 대가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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