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꼭대기에서 감옥으로
1980년대 미국 월가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쓰레기 취급 받던 채권으로 2천억 달러짜리 거대한 시장을 만들었고, 단 1년에 5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역사상 어떤 월급쟁이도 만져 본 적 없는 돈이었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그의 전화 한 통에 벌벌 떨었다. 그러나 세상의 꼭대기에 선 바로 그 순간, 그는 수갑을 차고 감옥으로 향했다. 이 글에서는 한 남자가 어떻게 금융의 흐름을 통째로 바꿨는지, 그리고 왜 그 화려한 제국이 한순간에 무너졌는지 처음부터 따라가 본다.
쓰레기 채권 속의 금맥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채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채권은 회사가 돈을 빌리면서 써 주는 일종의 빚문서다. 튼튼한 대기업의 빚문서는 안전하다며 모두가 반겼지만, 사정이 나쁜 회사의 빚문서는 떼일까 무서워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쓰레기 채권이라 부르며 외면했다. 그런데 한 젊은 금융가가 여기서 남들과 정반대로 생각했다. 사정이 나쁜 회사라고 다 망하는 것은 아니며, 위험한 만큼 이자를 훨씬 많이 준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모두가 버린 쓰레기 더미 속에서 그는 홀로 금맥을 보고 있었다.
한 남자의 책상이 자본의 관문이 되다
그의 통찰은 곧 어마어마한 현실이 되었다. 구석진 사무실에서 시작한 그의 채권 사업은 순식간에 월가의 심장으로 떠올랐다. 그가 다루던 쓰레기 채권 시장은 한때 2천억 달러 규모까지 부풀어 올랐다. 사정이 어려운 수많은 회사들이 오직 그를 통해서만 돈을 구할 수 있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든 그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한 남자의 책상이 사실상 미국 자본의 새로운 관문이 된 것이다. 대기업도, 신생 기업도 그의 승인 없이는 큰돈을 만지기 어려운 시대가 열렸다.
돈줄을 쥔 자의 힘
돈줄을 쥔다는 것은 곧 힘을 쥔다는 뜻이었다. 그의 채권은 이제 놀라운 일에 쓰이기 시작했다. 작은 투자자가 그의 도움으로 거대한 채권을 발행하면 순식간에 수십억 달러를 손에 쥘 수 있었다. 그 돈으로 자기보다 몇 배나 큰 대기업을 통째로 사 버리겠다고 위협할 수 있었다. 어제까지 하청을 받던 사람이 오늘은 거대 기업의 주인을 넘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이 젊은 금융가의 전화 한 통에 벌벌 떨었다. 그의 손끝에서 기업의 운명이 갈렸지만, 바로 그 거대한 힘이 서서히 위험한 선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흔들림 없는 확신
그는 자신의 방식에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남들이 위험하다며 피할 때 그는 오히려 기회를 보았다. 그는 종종 진짜 위험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믿는 곳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위험을 정확히 값으로 매길 수 있다면 남들이 버린 것에서 부를 캐낼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 대담한 생각이 그를 월가의 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바로 그 자신감이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그를 데려갔다. 확신은 그의 가장 큰 무기였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약점이기도 했다.
혁신의 이면, 어두운 길
그의 돈 버는 방식은 처음엔 영리했지만 점점 어두운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채권을 발행해 줄 때마다 막대한 수수료를 챙겼고, 거래가 커질수록 그의 몫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여기까지는 합법적인 사업이었다. 그러나 그는 서로 짜고 주식을 대신 맡아 주는 은밀한 거래에 손을 댔다. 남의 주식을 잠시 숨겨 주고 그 대가를 몰래 주고받은 것이다. 이런 뒷거래를 통해 세금을 피하고 유리한 정보를 나눠 가졌다. 겉으로는 화려한 금융 혁신이었지만 그 안쪽에서는 규칙을 어기는 손들이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정점과 바닥
그의 인생은 정점과 바닥이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전성기의 그는 단 1년에 5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웬만한 대기업의 1년 이익보다도 많은 돈을 한 개인이 혼자 가져간 것이다. 그러나 몰락은 그만큼 가팔랐다. 몇 년 뒤 그는 무려 6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벌금을 물어야 했다. 한 해에 벌던 돈보다 더 큰 돈을 죗값으로 토해 낸 셈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번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벌금을 낸 사람이 되었다. 화려한 숫자의 꼭대기에서 그를 기다린 것은 차가운 감옥이었다.
십여 년의 흥망
그의 흥망은 십여 년에 걸쳐 펼쳐졌다. 1970년대 후반 그는 남들이 외면한 채권에 승부를 걸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 내내 그의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졌고, 1987년 무렵 그의 수입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화려함의 뒤편에서 수사관들은 그의 뒷거래를 조용히 파고들고 있었다. 1989년 마침내 그는 수십 가지 혐의로 기소되었고, 이듬해 일부 혐의를 인정하고 죗값을 받아들였다. 그가 몸담았던 거대 투자회사도 그와 함께 무너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점에서 바닥까지, 그 길은 생각보다 짧았다.
안에서부터 무너진 제국
그 견고해 보이던 제국은 뜻밖의 곳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와 은밀히 거래하던 한 동료가 수사에 걸려들었고, 처벌을 줄이기 위해 결국 입을 열었던 것이다. 안에서부터 무너진 셈이었다. 가장 단단한 벽도 안쪽의 벽돌 하나가 빠지면 무너지는 법이다. 비밀 장부와 은밀한 통화 기록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화려하던 껍데기 안의 어두운 거래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아무리 거대한 부라도 규칙을 어긴 토대 위에 쌓였다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몰락이 남긴 숫자
그의 몰락이 남긴 숫자들은 그 자체로 한 시대를 요약한다. 그가 물어낸 벌금은 6억 달러로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액수였다. 법원은 그에게 10년의 형을 선고했고, 그는 다시는 이 업계에 발을 들일 수 없게 되었다. 그가 키운 채권 시장은 2천억 달러에 이르렀지만 정작 그 자신은 모든 것을 잃었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왕이 숫자 몇 개만 남긴 채 무대에서 내려온 것이다. 이 숫자들은 그의 재능의 크기이자, 동시에 그가 넘은 선의 대가이기도 했다.
왕은 지고 왕국은 남다
감옥에서 나온 뒤 그의 삶은 또 한 번 방향을 틀었다. 그는 막대한 재산의 일부를 병을 연구하는 데 쏟으며 자선가로 변신했다. 세월이 흘러 2020년에는 그동안의 죄를 공식적으로 용서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를 두고 세상의 평가는 지금도 두 갈래로 갈린다. 누군가는 규칙을 짓밟은 탐욕의 상징이라 부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금융의 흐름을 통째로 바꾼 시대의 천재라 부른다. 분명한 것은 그가 만든 쓰레기 채권 시장은 그가 감옥에 간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커졌다는 사실이다. 왕은 무너졌지만 그가 세운 왕국은 살아남은 셈이다.
마치며
이 남자의 이야기는 재능과 탐욕이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를 보여 주는 강렬한 사례다. 남들이 못 본 가치를 발견한 그의 눈은 분명 놀라웠다. 실제로 그가 개척한 고수익 채권 시장은 수많은 신생 기업에 돈을 대며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눈은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도 함께 보아 버렸다. 위험을 값으로 매기는 천재적인 감각이, 규칙을 우회하는 유혹과 만났을 때 그는 결국 후자를 택했다. 세상은 그가 만든 도구는 남겨 두고 규칙을 어긴 그의 손만 벌했다. 위대한 혁신과 위험한 반칙은 종종 한 끗 차이라는 것, 그리고 아무리 큰 성공도 어긴 토대 위에서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것, 이것이 그의 삶이 가장 값비싼 방식으로 남긴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