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49억 유로를 날린 트레이더
2008년 1월, 프랑스의 명문 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이 발칵 뒤집혔다. 단 한 명의 트레이더가 혼자서 49억 유로, 우리 돈으로 7조 원이 넘는 손실을 낸 것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몰래 굴리던 판돈의 규모였다. 무려 500억 유로, 그를 고용한 은행 전체의 시장 가치보다도 큰 금액이었다. 2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거대 은행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젊은 직원 한 사람 때문에 벼랑 끝으로 몰린 것이다. 그의 이름은 제롬 케르비엘, 훗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그 트레이더, 즉 불량 트레이더로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백오피스 출신의 평범한 직원
케르비엘은 화려한 명문대 출신도, 대단한 배경을 가진 인물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방 대학을 나와 은행의 뒤편에서 거래를 정산하고 확인하는 백오피스 부서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그저 성실한 중간급 직원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백오피스 경험이 훗날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그는 은행의 감시 시스템이 언제, 어떻게 거래를 확인하고 걸러내는지를 누구보다 훤히 꿰뚫고 있었다. 감시자의 눈이 어디를 보고 어디를 놓치는지 아는 사람만큼 위험한 존재는 없다. 이후 그는 트레이더로 자리를 옮겨 유럽 주가 지수와 관련된 거래를 맡았고, 그 평범한 얼굴 뒤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도박을 은밀히 시작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케르비엘 본인은 훗날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무단 거래를 상사들이 어느 정도 묵인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익이 나는 동안에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다가, 손실이 나자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웠다는 것이다. 은행 측은 이를 강하게 부인했지만, 이 주장은 훗날 사건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다. 진실이 무엇이든, 한 직원의 거래가 그토록 오래 방치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조직의 허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가짜 헤지라는 무기
케르비엘의 수법은 놀랍도록 교묘했다. 원래 트레이더가 큰 베팅을 할 때는 반대 방향의 거래를 함께 걸어 위험을 상쇄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을 헤지라고 부른다. 한쪽에서 손해를 봐도 다른 쪽에서 만회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는 안전장치인 셈이다.

그런데 케르비엘은 실제로는 한 방향으로만 어마어마하게 베팅했다. 그러면서 시스템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반대 거래를 입력했다. 장부상으로는 위험이 완벽하게 상쇄된 것처럼 보이도록 꾸민 것이다. 백오피스에서 일하며 익힌 지식으로, 그는 이 가짜 거래가 어떻게 하면 검사에 걸리지 않는지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의 진짜 판돈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겉으로는 안전한 균형, 속으로는 통제 불능의 한 방향 베팅이라는 이중 장부가 완성된 것이다.
눈덩이처럼 커진 판돈
케르비엘의 무단 거래는 어느 날 갑자기 터진 것이 아니었다. 그의 위험한 베팅은 이미 2005년 무렵부터 조금씩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교적 작은 규모였지만, 성공이 쌓이면서 그의 배포는 점점 더 커졌다.

2007년에 이르자 그가 굴리는 판돈은 통제 불능의 수준으로 부풀어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발각되기 직전까지 그의 베팅이 실제로는 큰 이익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시장이 그의 예상대로만 움직였다면, 그는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8년 초 시장이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그의 거대한 포지션은 순식간에 위험에 빠졌다. 그리고 2008년 1월, 마침내 은행이 수상한 거래를 포착했다.
숫자로 보는 사고의 규모
이 사건이 남긴 숫자들은 하나같이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케르비엘이 몰래 쌓아 올린 포지션은 무려 500억 유로에 달했다. 이는 당시 소시에테제네랄이라는 은행 전체의 시장 가치보다도 큰 금액이었다.

직원 단 한 명이 회사보다 더 큰 판돈을 굴린 셈이다. 진실을 확인한 경영진은 공포에 휩싸였고, 은행은 서둘러 그의 포지션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이 거대한 포지션을 시장에 한꺼번에 쏟아내면 가격이 폭락한다는 점이었다. 결국 은행은 단 3일 동안 급박하게 청산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49억 유로라는 천문학적인 손실이 확정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시점은 세계 금융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우던 때와 겹쳐, 시장의 혼란을 더욱 키웠다.

감시를 피한 네 가지 수법
케르비엘이 그토록 오래 감시를 피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몇 가지 치밀한 수법이 있었다. 첫째, 그는 시스템에 존재하지 않는 가짜 반대 거래를 입력해 위험을 감췄다. 둘째, 백오피스 시절 익힌 지식으로 동료의 접속 권한을 몰래 이용했다.

셋째, 거래를 뒷받침하는 가짜 서류와 이메일까지 직접 만들어냈다. 감사가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그럴듯한 증거를 내밀었다. 넷째, 그는 위험한 거래를 밤사이 잠시 지웠다가 다음 날 되살리는 방식으로 감시의 눈을 피했다. 이 모든 것은 회사의 통제 장치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조사관의 말처럼, 그는 시스템의 빈틈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평범함과 파국 사이
발각되기 전과 후, 케르비엘을 향한 세상의 시선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그는 그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중간급 트레이더였다. 연봉도 동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많은 직원 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러나 진실이 드러난 순간, 그는 하루아침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이더가 되었다. 그가 혼자 굴린 판돈 500억 유로는 그를 고용한 은행 전체보다도 큰 금액이었다. 이름 없던 직원이 금융 역사에 길이 남을 최대 손실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평범함과 파국 사이의 그 아득한 간극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충격을 남겼다.
사고의 청구서
케르비엘 사건의 규모를 숫자로 정리하면 그 심각성이 더욱 선명해진다. 그가 몰래 쌓은 포지션은 500억 유로, 최종 확정 손실은 49억 유로였다. 은행이 이 거대한 포지션을 정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일이었다.

그리고 법원이 그에게 처음 내린 형량은 징역 5년, 그중 3년이 실형이었다. 이 숫자들은 감시받지 않는 한 사람의 손이 얼마나 거대한 위험을 만들 수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동시에 그런 개인을 오랫동안 걸러내지 못한 조직의 통제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도 함께 드러낸다.
누구의 책임인가
케르비엘 사건은 뜻밖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 법원은 그에게 손실 전액인 49억 유로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평생을 일해도 결코 갚을 수 없는, 사실상 상징적인 금액이었다.

그런데 2014년, 프랑스 대법원은 뜻밖의 판단을 내렸다. 케르비엘의 유죄는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49억 유로의 배상은 지나치다며 취소한 것이다. 은행 역시 그의 위험한 거래를 방치한 책임이 있다는 이유였다. 이후 2016년, 그의 배상액은 100만 유로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는 개인의 잘못만큼이나, 그 잘못을 걸러내지 못한 조직의 책임 또한 무겁다는 사법적 판단이었다. 한 사람을 악당으로 만드는 것은 쉽지만, 그를 방치한 시스템을 고치는 일은 훨씬 어렵다.
이 판결은 금융계 안팎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쪽에서는 명백한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한 명의 직원이 회사보다 큰 판돈을 굴리는 동안 아무런 제동도 걸지 못한 은행이 아무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것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케르비엘 개인의 도덕성과는 별개로, 그 사건이 조직의 구조적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웠다. 결국 이 사건은 개인의 처벌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 전체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케르비엘은 출소 후 자신을 금융 시스템의 희생양이라 주장하며 책을 내고 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그를 동정하는 시선과 비난하는 시선은 지금까지도 팽팽하게 엇갈린다. 한 사람의 범죄인지, 시스템의 실패인지에 대한 논쟁은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논쟁 자체가 우리에게 더 나은 시스템을 고민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사고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만 몰아붙이면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정작 같은 사고가 다시 반복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진짜 재발 방지는 언제나 개인이 아니라 구조를 손보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케르비엘 사건은, 한 명의 로그 트레이더에 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현대 금융 시스템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취약함에 관한 값비싼 교과서이기도 하다.
마치며: 시스템을 향한 질문
혼자서 49억 유로를 날린 케르비엘의 이야기는 한 트레이더의 일탈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 사건은 한 개인의 탐욕과, 그것을 끝내 걸러내지 못한 시스템의 허점이 함께 만들어낸 참사였다. 우리는 흔히 사고가 터지면 한 명의 악당을 찾아 손가락질하려 한다. 그것이 가장 간단하고 속 편한 해결책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어쩌면 그를 막지 못한 시스템을 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사건 이후 세계의 은행들은 트레이더에 대한 감시와 내부 통제를 대폭 강화했다. 거래하는 사람과 그것을 확인하는 사람을 철저히 분리하고, 의무 휴가 제도를 통해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거래를 점검하는 장치도 도입했다. 실제로 많은 금융 사고가 담당자가 휴가를 떠나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대신 확인할 때 비로소 발각되곤 한다. 그래서 며칠간의 강제 휴가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중요한 내부 통제 장치로 자리 잡았다. 개인 투자자에게도 이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나 기관이라도, 견제와 확인이 없는 곳에서는 언제든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우리 곁의 시스템은 과연 얼마나 촘촘할까. 케르비엘 사건은 그 참사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그 무겁고도 근본적인 질문을 조용히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