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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맡기면 이자를 내야 했던 8년: 마이너스 금리는 왜 시작되었나

돈을 맡기면 이자를 내야 했던 8년: 마이너스 금리는 왜 시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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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는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배워 온 경제 상식이다. 그런데 만약 돈을 맡긴 대가로 오히려 매년 보관료를 내야 한다면 어떨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이것은 공상이 아니라 2014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8년 동안 유럽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 이름은 마이너스 금리. 돈의 시간 가치를 정반대로 뒤집어 버린 이 거대한 경제 실험의 처음과 끝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풀어 보려 한다.

돈을 맡기는데 왜 돈을 내야 할까

먼저 이 낯선 개념을 편의점 냉장고에 비유해 보자. 보통 편의점은 음료수를 시원하게 보관해 주는 대가로 따로 돈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편의점 주인이 음료수를 맡길 때마다 보관료를 받겠다고 선언했다고 상상해 보자. 사람들은 당연히 황당해할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바로 이 상황을 은행 세계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평소 시중은행은 쓰고 남은 여윳돈을 중앙은행에 맡겨 두고 약간의 이자를 받는다. 그런데 마이너스 금리에서는 정반대로, 돈을 맡길수록 잔액이 줄어든다. 맡기는 것 자체가 손해가 되는 셈이다. 누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돈을 금고에 묵혀 두고 싶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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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지점에 중앙은행의 의도가 숨어 있다. 중앙은행은 일부러 이 손해를 만들어 냈다. 시중은행이 돈을 금고에 쌓아 두지 못하게 만들어, 어서 기업과 가계에 빌려주도록 등을 떠민 것이다. 돈이 시중에 풀려야 사람들이 소비하고 투자하면서 경제가 다시 돌아가기 때문이다.

조금 더 쉬운 비유를 들어 보자. 동네에 치킨집을 새로 열려는 청년이 있다고 하자. 그가 창업 자금을 빌리려면 은행이 적극적으로 대출을 해 줘야 한다. 그런데 은행이 여윳돈을 그냥 금고에 넣어 두기만 하면, 그 청년에게 갈 돈은 영영 나오지 않는다. 마이너스 금리는 바로 이 막힌 혈관을 강제로 뚫으려는 시도였다. 은행이 돈을 묵힐수록 손해를 보게 만들어, 어떻게든 그 돈이 청년의 치킨집으로, 공장의 새 기계로, 가계의 소비로 흘러가도록 떠민 것이다. 돈은 고여 있으면 썩고, 돌아야 경제를 살린다는 오래된 격언을 정책으로 옮긴 셈이다.

마이너스 금리, 정확히 무엇을 뜻하나

용어를 한번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 일반적인 금리란 빌려준 돈에 붙는 일종의 보상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100만 원을 1년간 빌려주면, 1년 뒤에 그 보상으로 이자를 더 받는 것이 정상이다. 돈에는 시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100만 원이 1년 뒤의 100만 원보다 가치가 크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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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이너스 금리는 이 기본 전제를 거꾸로 뒤집는다. 돈을 맡긴 사람이 보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보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100만 원을 맡기면 1년 뒤에 99만 5천 원으로 줄어드는 식이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돈의 시간 가치가 음수가 되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표현한다. 교과서에서는 한때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뿐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여겨졌던 일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렇게 손해라면 차라리 현금을 금고에 쌓아 두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마이너스 금리에는 한계가 있다. 은행이 정 손해를 보기 싫으면 거액의 현금을 실물로 보관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조 원에 달하는 돈을 지폐로 바꿔 금고에 쌓아 두는 일은 현실적으로 엄청난 비용과 위험을 동반한다. 경비, 보관, 운송 비용을 따지면 차라리 약간의 마이너스 금리를 감수하는 편이 낫다. 중앙은행은 바로 이 빈틈을 노렸다. 현금 보관이 부담스러울 만큼만 금리를 낮춰, 은행들이 결국 돈을 풀 수밖에 없도록 정교하게 설계한 것이다.

진짜 적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었다

그렇다면 중앙은행은 도대체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답은 디플레이션이라는 단어에 있다. 우리는 보통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을 무서워한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오르면 살림이 팍팍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그 반대편,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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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떨어지면 소비자에게 좋은 일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의 심리다. 가격이 내일 더 싸질 것이라고 믿으면, 사람들은 오늘의 소비를 자꾸 뒤로 미룬다. 어차피 기다리면 더 싸질 텐데 굳이 지금 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소비가 멈추면 도미노가 시작된다. 물건이 안 팔리니 공장이 멈추고, 공장이 멈추니 일자리가 사라진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더욱 지갑을 닫고, 그러면 물가는 더 떨어진다. 이 악순환을 디플레이션의 함정이라고 부른다. 한번 빠지면 빠져나오기가 무척 어렵다. 1990년대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것도 바로 이 함정 때문이었다.

2014년, 유럽이 0%의 벽을 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 경제는 좀처럼 활력을 되찾지 못했다. 물가는 중앙은행의 목표치를 한참 밑돌았고, 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졌다. 금리를 0%까지 내려도 경제는 살아나지 않았다. 더 내릴 곳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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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때 유럽중앙은행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 2014년 6월, 예금금리를 마이너스 0.1%로 내리며 세계 최초로 0%라는 벽을 넘어선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가 잠깐의 비상 조치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금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015년과 2016년을 거치며 계속 내려갔고, 2019년 9월에는 마침내 마이너스 0.5%라는 최저점에 도달했다. 잠깐의 응급 처방이라던 정책이 어느새 한 시대의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 버렸다.

유럽을 넘어 번져 나간 실험

유럽의 이 대담한 실험은 곧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퍼졌다. 디플레이션과 오래 싸워 온 일본이 가장 먼저 동참했다. 일본은행은 2016년 1월, 마이너스 0.1% 금리를 도입하며 같은 길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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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안전 자산을 찾는 돈이 몰려들어 자국 통화가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무려 마이너스 0.75%까지 금리를 끌어내렸다. 덴마크 역시 비슷한 이유로 금리를 0% 아래로 내렸다. 한때 교과서에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적혀 있던 일이, 어느새 여러 선진국이 공유하는 공통의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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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나라마다 마이너스 금리를 택한 이유가 조금씩 달랐다는 것이다. 유럽과 일본이 주로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면, 스위스는 자국 통화가 너무 강해지는 것을 누르려는 목적이 컸다. 같은 약을 처방했지만, 치료하려는 병은 조금씩 달랐던 셈이다.

그래서, 효과는 있었을까

8년이나 이어진 이 거대한 실험은 과연 성공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평가는 지금도 팽팽하게 엇갈린다. 긍정적으로 보는 쪽은 마이너스 금리가 경제 붕괴를 막은 응급실의 심장 충격기였다고 말한다. 만약 그 조치가 없었다면 유럽은 일본처럼 길고 깊은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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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비판하는 쪽은 그 부작용을 지적한다. 마이너스 금리가 오래 이어지면서 은행들의 수익성이 크게 나빠졌다. 대출 이자로 먹고사는 은행 입장에서 금리가 바닥을 기면 돈을 벌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값싼 돈이 너무 오래 풀리면서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 가격이 과도하게 부풀어 올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유럽중앙은행 스스로도 한 보고서에서, 효과는 분명히 있었지만 그 비용 또한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신중한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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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일반 예금자, 즉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마이너스 금리를 직접 체감하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개인 예금 계좌에는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은행이 개인 예금에까지 보관료를 물렸다면, 사람들은 분노하며 돈을 모두 인출해 장롱에 넣어 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마이너스 금리의 칼날은 주로 은행과 은행 사이, 그리고 거액의 기관 자금에 겨눠졌다. 다만 그 여파는 결국 우리에게도 돌아왔다. 예금 이자가 사실상 0%에 가까워지면서, 성실하게 저축하는 사람일수록 자산을 불리기 어려운 시대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2022년, 실험은 정반대 이유로 끝났다

8년 동안 깊은 마이너스에 머물던 금리는 2022년에 극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척 역설적이다. 그토록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던 중앙은행이, 이번에는 정반대로 폭등하는 물가와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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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이후 공급망이 흔들리고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유로존의 물가 상승률은 8.6%까지 뛰어올랐다. 이것은 무려 40여 년 만의 최고치였다. 더 이상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다. 유럽중앙은행은 2022년 7월, 11년 만에 금리를 끌어올리며 마이너스 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세계 최초로 0%의 벽을 넘었던 그 실험은, 정확히 정반대의 이유로 막을 내린 셈이다.

이 역설은 통화정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보여 준다. 중앙은행은 늘 보이지 않는 미래를 상대로 운전대를 잡는다. 8년 전에는 물가가 너무 안 오를까 봐 마이너스 금리라는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는데, 정작 몇 년 뒤에는 물가가 너무 올라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마이너스 금리를 가장 먼저 도입했던 유럽이 비교적 빨리 실험을 끝낸 반면, 일본은 그 뒤로도 한참을 더 마이너스 금리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같은 처방이라도 나라마다 빠져나오는 시점은 제각각이었던 셈이다.

8년의 실험이 우리에게 남긴 것

그렇다면 이 낯선 실험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가장 큰 교훈은 경제학에 절대라는 단어가 없다는 사실이다.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는다는 가장 기초적인 상식조차, 위기 앞에서는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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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교훈은 중앙은행의 정책이 거대한 배의 키와 같다는 점이다. 한번 방향을 틀면 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다시 되돌리는 데에도 그만큼의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8년이라는 긴 실험 기간 자체가 이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비상 처방은 일단 끝났다. 그러나 경제는 늘 순환한다. 언젠가 또다시 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면, 중앙은행은 다시 한번 이 낯선 카드를 만지작거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8년의 실험을 단순한 옛이야기로 흘려보내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음에 뉴스에서 금리라는 단어가 나올 때, 그것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경제 전체를 움직이는 거대한 키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면, 세상을 보는 눈이 한층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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